내 마음이 먼저 웅성댄 날, 서울웨딩박람회 준비기
아침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오던 주말, 그때까진 몰랐다. 반쯤 비뚤어진 파자마 차림, 입가에 묻은 치약 거품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며 “이번 주말엔 그냥 늘어지자”라고 중얼거렸으니까. 하지만 휴대폰 알림에 떠 있는 “서울웨딩박람회 D-3” 문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예복이니, 드레스니, 예산이니… 머릿속에서 시끌시끌한 체크리스트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 그래. 연애 2,675일 차, 이제는 정말 결혼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때가 된 거지? 내 손끝은 이미 달달 떨리고 있었다. 왜 이리 겁이 많아졌을까, 왜 이리 설레 버릴까? 혼자 중얼대다 결국 가방을 들고 나섰다.
이 글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그러니까 D-3에서 D+7까지 내 마음속에 쌓인 소소한 기록이다. “누군가 비슷한 떨림을 가지고 있다면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어쩌면, 내 좌충우돌이 누군가의 알찬 준비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
장점·활용법·꿀팁
1. 모든 부스를 한 판에 훑어볼 수 있다는 기막힌 장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줄 서는 것도, 큰 소리로 경쟁하듯 설명하는 분위기도 어색하다. 그런데 서울웨딩박람회 현장은 의외로 ‘미니 동화 속 시장’ 같았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 드레스가 나풀거리고, 시식 코너에서 케이크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그 모든 걸 단 하루 만에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웨딩 준비생에게 큰 축복. 괜히 발품 팔며 여기저기 헤매지 않아도 되니까.
다만, 나는 처음에 방향 감각을 잃어 슬쩍 뱅뱅 돌았다. 기억해 두면 좋은 팁? “드레스 → 예물 → 스냅 → 허니문” 순서로 큰 섹션을 먼저 체크하고, 마음에 드는 부스엔 별표★를 붙여 두자. 그럼 나중에 지치더라도 우선순위가 명확해져서 허둥댈 일이 줄어들더라.
2. 혜택은 ‘맨 앞’이 아니라 ‘중간’에서 터진다
사람들은 보통 입장하자마자 첫 부스에 몰려들지만, 내 경험상 가장 파격적인 프로모션은 오히려 중간쯤에 숨어 있었다. 이유? 초반엔 방문객이 많아 굳이 큰 할인 없이도 계약이 잘 되기 때문이란다. 나는 두 번째 커플링 견적을 받을 때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라며 돌아섰는데, 세 번째 부스에서 무려 18% 할인이라니! 덕분에 예상 예산을 40만원이나 절감했다. 그때 끊임없이 손목을 두드리며 “지금 잡아야 해요!”라던 직원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미안하지만, 난 돈이 소중하거든.
3. ‘나만의 체크리스트’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편했다
원래는 휴대폰 메모장에 항목을 쭉 적어 갔는데, 화면이 작아 여기저기 스크롤 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결국 옆자리 벤치에 앉아 급하게 수첩을 꺼내 손글씨로 다시 적었다. 볼펜이 살짝 번졌지만, 그 촉감 덕분인지 머리가 더 또렷해졌다. 웨딩 컨설턴트가 건네준 명함을 곧바로 스티커처럼 붙여 둘 수도 있었고…. 소소하지만, 가장 나답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단점
1. 박람회장의 그 ‘과열된 친절’
“고객님, 어디서 오셨어요? 예산은요? 날짜는 정하셨어요?” 질문 세례가 반갑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딱히 거짓말할 이유도 없는데, 속으로 ‘정보가 너무 빨리 새는 건 아닐까’ 긴장했던 것도 사실. 한 번은 드레스 피팅 도우미가 허리를 꽉 조여 주다 보넷 끈이 끊어져 버렸다. 내 실수도 아닌데 덜컥 미안해져 버린 그 상황… 결국 ‘골반이 복숭아처럼 예쁘다’는 칭찬 한마디에 넘어가 계약했고, 집에 와서 숫자 계산하다 식은땀이 뚝뚝. 이래서 사람 마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또 배우고야 말았다.
2. 정작 중요한 건 놓칠 위험
부스마다 이벤트 룰렛, 폴라로이드 포토존, 미니 콘서트까지. 눈이 호강하는 건 좋은데, 그러다 보면 ‘식장 예약’ 같은 큰 줄기를 놓칠 수 있다. 나? 나는 식장 상담 부스를 건너뛰었다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야 “식장!!!” 하고 소리 질렀다. 옆 사람 놀라서 이어폰을 빼더라. 덕분에 다음 날 다시 박람회장으로 출근 도장… 피곤했지만, 두 번 가본 덕에 동선 최적화 노하우가 생겼으니 일장일단.
FAQ
Q. 박람회 입장권, 꼭 예매해야 하나요?
A. 나는 현장 발권으로 들어갔는데, 30분 줄 섰다. 사전 예매는 무료거나 천원대라 하니, 웬만하면 미리 챙겨 두길 추천. 줄 서는 동안 애인과 싸우면 시작도 전에 기운 빠진다.
Q. 예산을 어떻게 정하면 될까요?
A. 나도 처음엔 ‘그냥 적당히?’ 했는데, 막상 상담받다 보면 구체적 숫자가 없으면 휘둘린다. 최소·최대 범위를 적어 가자. “200~250만 원”처럼. 그래야 갑작스런 옵션 추가에도 중심을 지킬 수 있다.
Q. 하루 만에 다 볼 수 있을까요?
A. 가능은 하지만, 발목과 뇌가 탈진할 확률 90%. 나는 점심 무렵 잠깐 밖으로 나와 커피 한 잔 마시며 머리를 식혔다. 하필 그때 빗방울이 내려 양말이 젖었는데, 그 덕분에 오후에는 양말 대신 슬리퍼로 다녀서 더 편했다.
Q. 웨딩박람회에 부모님 모시고 가는 게 좋을까요?
A. 내 경우, 첫날은 둘만 가서 편했지만, 계약 직전 단계의 둘째 날엔 어머님이 오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 어른 눈엔 또 다른 체크 포인트가 보이더라. 단, 의견 충돌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화 코드를 맞춰 두길.
마지막 중얼거림.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이 꾸리는 새 동네다. 박람회는 그 동네에 놓인 수천 개의 문 중 몇 개를 열어 보는 과정일 뿐. 설레기도, 겁나기도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직접 만져 보고 들어 보길 바란다. 이 기록이, 미래의 우리 혹은 누군가에게 작은 등대가 되길 바라며—나는 숟가락 하나 들고, 다음 계획을 또 고민 중이다. 참, 내일은 예복 피팅 날이네? 또 무슨 실수를 할지 모르지만, 뭐 어때. 노트 한 장 더 채워지겠지.